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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바디 리뷰 (평범한 가장, 버스 액션, 밥 오든커크)

by riverwithhome 2026. 5. 19.

솔직히 말하면, 저는 이 영화를 아무 기대 없이 틀었습니다. 야근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 소파에 쓰러지듯 앉아서, 그냥 머리 비우고 볼 액션 영화가 필요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다 보고 나서 "이거 생각보다 괜찮은데"라는 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평범한 중년 가장이 억눌린 분노를 폭발시키는 이야기, 영화 '노바디'입니다.

평범한 가장이라는 설정, 왜 이게 효과적일까

혹시 액션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이 너무 처음부터 강해서 오히려 긴장감이 없었던 경험 있으신가요? 저는 그런 영화들을 보면서 가끔 무감각해지곤 했습니다.

'노바디'는 그 반대에서 출발합니다. 주인공 허치 맨셀은 회사 다니고, 쓰레기 버리고, 가족 눈치를 보며 살아가는 남자입니다. 집에 강도가 들었을 때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소극적으로 행동하는 장면은 솔직히 꽤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이게 정말 액션 영화 주인공 맞나?" 싶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영화는 그 답답함을 의도적으로 쌓아 올립니다. 이것을 영화 이론에서는 캐릭터 아크(Character Arc)라고 부릅니다. 캐릭터 아크란 주인공이 이야기 안에서 내면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의미하는데, '노바디'는 이 변화의 낙차를 극단적으로 크게 설계했습니다. 처음이 초라할수록 폭발이 강해지는 구조입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건데, 그 억눌린 시간들이 충분히 쌓인 뒤에 터지는 액션이라 단순한 통쾌함과는 다른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해방감에 가까운 느낌이었습니다.

버스 안에서 벌어지는 싸움 장면을 보기 전과 후, 이 영화는 완전히 다른 영화가 됩니다. 혹시 이 장면을 보면서 저처럼 "어, 이거 진짜 아프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던 분 계신가요?

허치는 버스 안에서 맞고 넘어지고 숨 헐떡거리면서 겨우 싸웁니다. 총알을 피하고 수십 명을 가볍게 처리하는 그런 장면이 아닙니다. 제가 이 장면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카메라 편집 방식이었습니다.

요즘 액션 영화에서 자주 사용되는 기법 중 하나가 점프 컷(Jump Cut)입니다. 점프 컷이란 같은 장소에서 연속되어야 할 장면을 의도적으로 잘라 붙여 어색한 이음새를 만들어내는 편집 방식으로, 과도하게 쓰이면 액션의 흐름이 끊겨 동선을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노바디'는 이 점을 피해 갑니다. 카메라가 과하게 흔들리지 않고, 좁은 공간 안에서의 동선을 꽤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그래서 타격감이 고스란히 전달됩니다.

또한 이 장면에서 쓰이는 블록킹(Blocking) 연출도 눈에 띄었습니다. 블록킹이란 배우와 카메라의 움직임을 사전에 치밀하게 설계하는 연출 기법으로, 좁은 공간에서 여러 인물이 뒤엉킬 때 특히 중요합니다. 감독 일리야 나이슐러가 이 부분을 꽤 세밀하게 신경 쓴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노바디'의 액션이 다른 액션 영화들과 차별화되는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주인공도 맞고 다치는 현실적인 타격감
  • 과도한 점프 컷 없이 동선을 명확히 보여주는 편집
  • 블랙코미디 톤을 유지해 지나치게 무겁지 않은 분위기
  • 좁은 공간을 활용한 블록킹 중심의 근접 격투

밥 오든커크라는 캐스팅, 왜 이게 오히려 더 무섭게 느껴질까

배우 밥 오든커크를 처음 들었을 때,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와 '베터 콜 사울'에서 능청스러운 변호사 캐릭터로 유명한 배우가 액션 주인공이라니, 처음엔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영화를 보고 나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오히려 그 평범한 얼굴 덕분에 분노가 폭발하는 순간이 더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잘 생긴 히어로의 결의에 찬 표정과는 다른, 조용하고 평범한 중년 남자의 눈빛에서 광기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느낌이 묘하게 불안감을 줬습니다.

이 캐스팅은 미장센(Mise-en-scène) 전략과도 연결됩니다. 미장센이란 화면 안에 배치되는 모든 시각적 요소, 즉 배우의 외형, 의상, 공간, 조명 등을 통해 의미를 전달하는 영화 연출 개념입니다. 허치의 낡은 회사복과 지친 표정은 그 자체로 "이 사람은 오랫동안 참아왔다"는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전달합니다. 밥 오든커크라는 배우의 외형은 그 미장센에 정확히 맞아떨어졌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억압된 감정이 특정 임계점을 넘었을 때 폭발적으로 표출되는 현상을 감정 조절 실패(Emotional Dysregulation)라고 설명합니다. 감정 조절 실패란 내적 충동이나 외부 자극에 의해 감정 상태를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게 되는 상태를 의미하는데, 허치라는 캐릭터가 바로 그 과정을 영화 내내 보여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심리학회(APA)는 만성적인 억압 상태가 심리적 폭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꾸준히 연구해왔습니다(출처: 미국심리학회).

중년의 피로감, 이 영화가 건드리는 감정의 정체

'노바디'가 단순한 액션 영화를 넘어서는 이유가 뭔지 생각해보셨나요?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허치가 킬러라서 무서운 게 아니라, 더 이상 잃을 게 없어진 평범한 사람이라서 무섭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영화 속 허치는 가족 안에서도 투명인간 취급을 받고, 직장에서도 존재감 없이 하루를 흘려보냅니다. 이 설정은 많은 관객, 특히 중년 남성 관객들에게 은근하게 공감을 만들어냅니다. 실제로 한국 직장인의 번아웃 경험률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점은 이 영화의 주제가 단순히 픽션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출처: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제 경험상 이런 영화는 스트레스가 심한 날 볼수록 더 진하게 느껴집니다. 야근 끝에 집에 와서 봤을 때, 허치가 버스에서 싸우는 장면에서 이상하게 속이 시원해졌습니다. 그게 폭력이 좋아서가 아니라, 오래 참아온 감정이 터지는 그 순간에 감정 이입이 됐던 것 같습니다.

다만 제가 조금 아쉬웠던 부분은, 후반부로 갈수록 초반의 현실적인 톤이 흐려진다는 점입니다. 마지막 전투 장면은 거의 슈퍼히어로 영화처럼 느껴질 정도로 스케일이 커집니다. 초반 분위기를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이 낙차가 조금 거슬릴 수 있습니다. 물론 오락 영화로서의 재미는 충분히 살렸지만, 제 취향에서는 초반의 거칠고 투박한 현실감이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결국 '노바디'는 완전히 새로운 영화는 아닙니다. 제작진 일부가 '존 윅' 시리즈와 겹친다는 사실이 이미 그 사실을 말해줍니다. 하지만 익숙한 구조를 어떻게 조합하느냐가 중요한데, 이 영화는 그 부분에서 분명히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스트레스 쌓인 날, 맥주 한 캔 옆에 두고 보기에 이만한 영화가 흔하지 않습니다. 아직 안 보셨다면 버스 장면 하나만 보고도 충분히 후회하지 않을 영화입니다.


참고: - 미국심리학회(APA) — 감정 조절 관련 연구: https://www.apa.org

노바디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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