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모비우스를 극장에서 놓쳤을 때 크게 아쉽지 않았습니다. 평가가 워낙 엇갈린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들었거든요. 결국 OTT로 뒤늦게 봤는데, 기대치를 낮게 잡았던 덕분인지 생각보다 볼 만한 구석이 꽤 있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조금만 더 다듬었다면 정말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었겠다는 아쉬움도 진하게 남았습니다.

안티히어로 설정의 매력과 캐릭터 완성도
제가 직접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소재 하나는 정말 잘 골랐다"였습니다. 모비우스는 마블 코믹스에서 리빙 뱀파이어(Living Vampire)로 불리는 캐릭터입니다. 여기서 리빙 뱀파이어란 마법이나 저주가 아니라 과학 실험으로 탄생한 흡혈귀를 뜻합니다. 신화적 존재가 아니라 의학 연구의 부산물이라는 설정이 기존 흡혈귀 캐릭터들과 확실히 다른 결을 만들어 냅니다.
영화 속 마이클 모비우스는 희귀 혈액 질환을 앓으며 살아온 천재 의사입니다. 그가 선택한 실험 방법은 유전자 편집(Gene Editing) 기술을 기반으로 합니다. 여기서 유전자 편집이란 특정 생물의 유전 정보를 인위적으로 수정하거나 다른 종의 유전자를 결합하는 기술을 의미합니다. 박쥐의 유전자를 인간에게 적용한다는 설정이 황당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영화는 이 부분을 꽤 진지하게 묘사합니다. 그래서 제 경험상 초반 30분은 오히려 SF 스릴러에 가까운 긴장감이 있었습니다.
자레드 레토의 연기도 생각보다 훨씬 잘 맞았습니다. 몸이 쇠약한 의사에서 초인적 신체 능력을 가진 존재로 변해 가는 과정을 신체 언어만으로 표현하는 장면은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반향 정위(Echolocation) 능력을 시각화하는 연출이 독창적이었습니다. 반향 정위란 박쥐처럼 음파를 발사하고 그 반사파로 주변 환경을 감지하는 능력으로, 영화에서는 이를 공간이 일렁이듯 표현해 냈습니다. 슈퍼히어로 영화에서 흔히 보던 방식과 달라서 신선했습니다.
모비우스라는 캐릭터가 특별한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세상을 구하거나 복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과 타인의 병을 치료하려던 동기에서 출발한다
- 능력을 얻은 후에도 인간성을 잃지 않으려는 내적 갈등이 지속된다
- 선과 악의 경계가 불분명한 안티히어로(Anti-hero) 포지션을 유지한다
이 세 가지가 제대로 결합됐을 때 모비우스는 마블 세계관에서 충분히 차별화된 캐릭터가 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초반에는 그 가능성이 확실히 느껴졌고, 그래서 중반 이후의 전개가 더 아쉽게 다가왔습니다.
편집의 한계와 악역 마일로의 아쉬운 활용
맷 스미스가 연기한 마일로는 어린 시절부터 모비우스와 같은 병원에서 자란 친구입니다. 누구보다 그의 고통을 이해하는 인물이 결국 가장 큰 적이 된다는 구도는 드라마적으로 정말 훌륭한 설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 관계가 관객에게 충분히 전달되지 못하는 순간이 너무 많았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내러티브 페이싱(Narrative Pacing)의 문제였습니다. 여기서 내러티브 페이싱이란 이야기 안에서 사건과 감정이 쌓이는 속도를 조율하는 기술을 의미합니다. 두 인물의 감정이 충분히 쌓이기 전에 갈등이 폭발해 버리니, 마지막 대결이 와도 마음이 크게 움직이질 않았습니다. 같은 병을 가진 두 사람이 왜 전혀 다른 선택을 했는지에 대한 설득력이 부족했던 겁니다.
편집 문제도 실제로 느껴졌습니다. 예고편에서 봤던 장면이 본편에서 사라져 있거나, 장면과 장면 사이의 연결이 어색한 순간이 있었습니다. 영화 전문 매체들도 이 부분을 공통적으로 지적했는데, 제작 과정에서 상당한 분량이 편집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있었습니다(출처: IMDb). 이야기 흐름이 뚝뚝 끊기는 느낌은 아무리 배우들이 잘해도 메울 수 없는 부분이었습니다.
액션 연출에서는 CGI(Computer Generated Imagery), 즉 컴퓨터로 생성한 시각 효과의 완성도가 아쉬웠습니다. 빠른 이동 장면에서 잔상 효과를 과도하게 사용하다 보니 누가 어디서 어떻게 싸우는지 한눈에 파악하기 어려운 순간이 있었습니다. 슈퍼히어로 영화의 액션은 시각적 명확성이 중요한데, 이 영화는 그 부분에서 조금 아쉬운 선택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편 마블 스튜디오의 영화 제작 방식을 연구한 자료에 따르면, 슈퍼히어로 영화의 흥행에는 캐릭터의 내적 동기 설득력이 관객 만족도와 높은 상관관계를 보인다고 합니다(출처: 로튼 토마토). 모비우스가 아쉬운 평가를 받은 이유가 액션이나 시각효과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했다는 점에서, 제가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감정이 그냥 주관적인 것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모비우스는 가능성과 아쉬움이 절반씩 남는 영화였습니다. 리빙 뱀파이어라는 설정, 자레드 레토의 연기, 어두운 분위기 모두 분명히 매력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끝까지 밀어붙일 각본의 밀도와 편집의 완성도가 그 매력을 충분히 받쳐 주지 못했습니다. 만약 후속편이 나온다면 모비우스가 인간성과 본능 사이에서 흔들리는 과정을 훨씬 깊게 다뤄 줬으면 합니다. 그 이야기를 제대로 만든다면 소니 마블 세계관에서 충분히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합니다.
참고: - IMDb, Morbius (2022): https://www.imdb.com/title/tt5347218/
- 로튼 토마토, Morbius 리뷰: https://www.rottentomatoes.com/m/morbi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