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범죄도시3를 보러 가면서 기대치를 좀 낮춰 갔습니다. 1편과 2편이 워낙 강렬했기 때문에, 세 번째는 어딘가 힘이 빠질 것 같다는 예감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보고 나서 친구와 집에 걸어오면서 나눈 첫 마디가 "이번엔 진짜 그냥 편하게 보기 좋았다"였습니다. 예감은 반쯤 맞고, 반쯤 틀렸던 셈입니다.
직선적 서사 구조가 만든 속도감, 그 이면
제가 직접 영화관에서 느낀 건, 이번 범죄도시3의 내러티브 구조(narrative structure)가 전작들보다 훨씬 단순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여기서 내러티브 구조란 이야기가 전개되는 방식, 즉 사건들이 어떤 인과관계와 순서로 배열되는지를 의미합니다. 1편이 뒷골목 로컬 범죄 조직의 생태계를 촘촘하게 묘사했다면, 이번 작품은 해외를 배경으로 한 범죄 조직 추적이라는 흐름이 시작부터 끝까지 거의 직선으로 달립니다.
그 덕분에 스토리를 따라가는 부담이 없었습니다. 장르적으로 보면 이른바 린 스토리텔링(lean storytelling)에 가깝습니다. 린 스토리텔링이란 불필요한 서브플롯이나 복선을 최대한 걷어내고, 중심 사건에만 집중하는 서술 방식을 말합니다. 덕분에 러닝타임 내내 템포가 끊기지 않고, 관객이 지루함을 느낄 틈이 거의 없었습니다. 영화관에서 실제로 중반쯤에 옆자리 관객이 웃음을 터뜨리는 순간들이 꽤 있었는데, 분위기 자체가 들떠 있었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기억에 남는 장면이 많지 않았습니다. 이건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빠르게 찾아온 아쉬움이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실제로 이슈가 된 해외 원정 범죄 소재를 배경으로 깔았는데, 그걸 사회적 맥락으로 깊게 파고드는 대신 액션의 공간적 배경으로만 활용했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영화 비평 용어로 보면 미장센(mise-en-scène) 측면에서 이국적 로케이션의 활용도가 아쉬웠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습니다. 미장센이란 화면 안에 담기는 모든 시각적 요소들, 즉 배경, 조명, 인물 배치 등을 통해 연출이 의미를 만들어내는 방식을 뜻합니다. 이국적인 배경이 있었음에도 그게 서사에 깊이를 더하기보다는 그냥 '다른 곳에서 싸우는 마석도'로만 소비된 느낌이 들었습니다.
2023년 기준 한국 영화 산업의 관객 회복 추세를 보면, 시리즈 속편의 흥행 공식은 전작의 핵심 매력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강력한 전략으로 분석됩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범죄도시3가 택한 방향도 정확히 이 공식을 따른 것이고, 흥행 측면에서는 분명히 유효했습니다.
범죄도시3의 서사 구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이야기 구조가 직선적이어서 누구나 부담 없이 따라갈 수 있습니다
- 해외 배경 원정 범죄라는 소재는 시의성이 있지만, 사회적 메시지보다는 액션 배경으로 기능합니다
- 빠른 템포 덕분에 상영 중 몰입도는 높지만, 상영 후 여운은 짧은 편입니다
악역의 존재감과 마석도라는 캐릭터 공식
제가 이번 작품에서 가장 흥미롭게 지켜본 부분은 악역 구조였습니다. 전작들이 강렬한 빌런 캐릭터 한 명을 중심에 두고 주인공과의 대립을 극적으로 끌어올렸다면, 이번에는 여러 명의 악역이 분산되는 앙상블 빌런 구조를 택했습니다. 앙상블 빌런이란 단일 주요 악역 대신 복수의 적대 인물이 역할을 나눠 맡는 캐릭터 배치 방식을 말합니다. 이 구조는 이야기의 위협을 다층적으로 느끼게 하는 장점이 있지만, 반대로 관객이 특정 인물에게 감정을 집중하기 어렵게 만드는 단점도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솔직히 이번 악역 중에서 이준혁이 맡은 캐릭터를 볼 때마다 마음 한켠에서 "저 배우는 악역이 잘 어울리지 않는데"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쌓아온 단정하고 올곧은 이미지 때문인지, 아무리 극 중에서 악한 행동을 해도 금방이라도 손 씻고 멀쩡하게 살아갈 것 같은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이건 저만의 느낌일 수도 있지만, 함께 간 친구도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반면 마석도라는 캐릭터는 여전히 강력합니다. 캐릭터 아크(character arc), 즉 인물이 이야기를 통해 내면적으로 변화하고 성장하는 곡선이 거의 없다는 점은 비판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달리 보면, 마석도는 처음부터 완성된 캐릭터입니다. 관객이 기대하는 포인트를 정확히 알고 그걸 반복적으로 충족시키는 방식은, 영화 마케팅 용어로 말하면 브랜드 아이덴티티(brand identity)를 일관되게 유지하는 전략에 가깝습니다. 브랜드 아이덴티티란 특정 인물이나 제품이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고유한 이미지와 가치의 총체를 말합니다. 마동석이라는 배우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가 된 셈이고, 그게 이 시리즈가 계속 유지되는 핵심 동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친구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반복된 건 "아가리또 고자이마스" 같은 개그 대사였습니다. 한국인이라면 이 대사가 왜 웃긴이 이해하겠죠? 코미디 릴리프(comedy relief), 즉 긴장감을 순간적으로 해소하는 유머 장치가 이번 작품에서 액션만큼이나 강하게 기억에 남은 것입니다. 코미디 릴리프란 극적 긴장이 고조된 순간 사이에 삽입되는 유머로, 관객의 감정 피로도를 낮추는 역할을 합니다. 한국 콘텐츠진흥원 자료에 따르면, 액션 장르에서 코미디 요소를 적절히 결합한 작품의 재관람 의향과 입소문 지수가 순수 액션 장르보다 높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습니다(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범죄도시 시리즈가 이 공식을 잘 활용하고 있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범죄도시3는 전작보다 새롭지 않지만, 이 시리즈가 무엇을 목표로 하는지를 다시 한번 분명히 보여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깊은 여운보다 시원한 카타르시스, 복잡한 서사보다 직관적인 재미를 원하는 관객에게는 여전히 충분히 볼 만한 선택입니다. 다음 시리즈에서 악역의 존재감이 얼마나 다시 강해질지, 그게 개인적으로 가장 궁금한 지점입니다.
참고: - 영화진흥위원회 (https://www.kofic.or.kr)
- 한국콘텐츠진흥원 (https://www.kocc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