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시작해보고 싶은데, 잘 안 될까봐 손도 못 대고 있는 경험, 한 번쯤 있지 않으신가요. 저도 그런 쪽이었는데, 2024년 8월에 영화관에서 빅토리를 보고 나서 그 기분이 좀 달라졌습니다. 거창한 감동은 없었는데, 이상하게 오래 남는 영화였습니다.
도전을 망설이는 사람에게 건네는 이야기
뭔가 해보고 싶은데 시작을 못 하겠는 분들, 이 영화가 꽤 직접적으로 말을 걸어옵니다. 빅토리는 청춘 서사 영화입니다. 여기서 청춘 서사란, 단순히 젊은 시절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가 아니라 자아 형성기의 불안과 선택, 실패를 다루는 내러티브 구조를 의미합니다. 주인공들은 목표가 있지만 확신이 없고, 움직이지만 방향이 맞는지 모르는 상태입니다. 그 애매함이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저는 원래 새로운 일에 쉽게 뛰어드는 성격이 아닙니다. 대학 시절, 친구가 공모전에 같이 나가자고 했을 때도 처음에는 계속 거절했습니다. 못하면 민망할 것 같았고, 시간만 버리는 거 아닐까 싶었거든요. 결국 얼떨결에 같이 준비했고, 결과는 별로였습니다. 상도 못 받았고 발표도 망쳤습니다. 근데 그 기억이 아직도 좋게 남아 있습니다. 밤새 자료 만들고 아이디어 나누면서 웃던 시간이 생각나서요. 빅토리를 보면서 그때 감각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영화 속 인물들이 딱 그랬습니다. 완벽한 준비 없이도 일단 움직이고, 넘어지면 또 일어납니다. 그 과정을 너무 빛나게만 포장하지 않는 점이 오히려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빅토리는 배우들의 앙상블 연기가 중심을 잡아주는 영화입니다. 앙상블 연기란 주연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배우가 유기적으로 호흡을 맞추는 방식으로, 팀 단위의 감정선을 함께 이끌어가는 연기 형태를 말합니다. 이 영화에서 그 중심에 이혜리가 있었습니다.
이혜리의 연기력, 그리고 배우들의 앙상블
이혜리는 응답하라 1988로 이미 연기력을 검증받은 배우입니다. 빅토리를 보면서 이 글을 쓰기 위해 이혜리의 필모그래피를 찾아봤는데, 생각보다 훨씬 많은 작품에 출연했더라고요. 그 경험이 쌓인 덕분인지, 빅토리에서의 연기는 과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갔습니다. 비슷한 나이대의 캐릭터를 다시 맡았음에도 어색함이 없었던 건, 그 사이에 쌓인 연기 스펙트럼 덕분이라고 봤습니다.
친구들끼리 모여 있는 장면들이 특히 편안했습니다. 연출된 느낌보다는 실제로 어딘가에서 벌어졌을 법한 분위기였거든요.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건, 이런 자연스러운 집단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건 배우 개인의 역량도 있지만 현장 분위기가 받쳐줘야 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점에서 감독의 연출 방식도 꽤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빅토리를 보면서 영화 써니가 계속 떠올랐습니다. 분위기도, 배경도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알고 보니 같은 제작사에서 만든 영화였습니다. 처음에는 따라한 건가 싶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동일 제작사라는 걸 알고 나서는 오히려 납득이 됐습니다.
다만, 빅토리는 써니를 완전히 넘어서진 못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써니가 가진 시대적 감수성과 인물들의 감정 밀도는 조금 다른 층위에 있었거든요. 빅토리는 스토리 전개 구조 면에서 비교적 예측 가능한 편이고, 캐릭터의 내면 변화가 좀 더 빠르게 처리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저처럼 학창 시절에 조용히 공부만 하던 스타일이라면, 영화 속 인물들의 에너지에 100% 공감하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빅토리가 참고할 만한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청춘 영화 특유의 에너지와 도전 서사를 좋아한다면 충분히 즐길 수 있습니다
- 강한 반전이나 묵직한 드라마를 기대하면 다소 평범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 써니를 재밌게 봤다면 분위기는 익숙하지만, 정서적 깊이는 다르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 친구들과 함께 보거나, 지금 뭔가 도전 중인 사람이라면 공감 포인트가 많습니다
국내 영화 관람 통계를 보면 청춘 장르 영화는 20대 초반보다 오히려 3040 관객층에서 회고적 공감을 유발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분석이 있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저도 현장에서 관람하면서 비슷한 연령대 관객들이 조용히 웃거나 멈추는 장면들을 봤는데, 그 반응이 이 데이터와 맞닿아 있었습니다.
영화가 끝나도 남는 것, '빅토리'의 진짜 의미
빅토리라는 제목이 처음에는 단순해 보였습니다. 이기면 끝나는 이야기구나 싶었는데, 실제로는 달랐습니다. 이 영화에서 말하는 빅토리는 결과론적 승리가 아닙니다. 내러티브 구조상 성장형 서사에 해당합니다. 성장형 서사란 주인공이 외부 갈등을 해결하는 것보다 내면의 변화와 선택을 통해 스스로를 완성해나가는 이야기 방식을 말합니다. 결국 1등이 아니어도, 끝까지 가봤다는 것 자체를 승리로 보는 시각입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저는 영화보다 저 자신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지금 뭔가를 끝까지 해보고 있는 걸까. 노력하다 어느 순간 멈추는 게 습관이 된 건 아닐까. 저의 취미인 뜨개질만 해도, 완성된 작품은 끝까지 한 것들뿐입니다. 반쯤 하다 놓은 것들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작은 것이지만 그 사실이 꽤 선명하게 와닿았습니다.
영화 속 대사처럼, 끝까지 해본 사람만이 아는 결과가 있습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분석에 따르면, 성장 서사를 다룬 국내 영화는 관람 이후 개인 동기 부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빅토리가 딱 그런 영화였습니다. 크게 울리지는 않았지만, 본 뒤에 뭔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
빅토리는 완벽한 청춘 영화라기보다, 지금 뭔가를 망설이고 있는 사람에게 조용히 말을 거는 영화입니다. 대단한 결론보다 작은 움직임을 응원하는 이야기라, 지금 시작할까 말까 고민 중이라면 한 번쯤 보실 것을 권해드립니다. 결과보다 과정이 더 오래 남는다는 것, 이 영화가 그걸 꽤 잘 보여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