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부트(Reboot)라는 말이 붙으면 왜 먼저 거부감이 드는 걸까요. 저도 그랬습니다. 2012년 극장에서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을 처음 봤을 때, 토비 맥과이어가 아닌 앤드루 가필드의 얼굴을 보며 내내 마음이 반쯤 닫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한참 지난 뒤 다시 꺼내 봤더니, 예전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영화가 왜 지금 재평가받는지, 그 이유를 직접 확인해 보실 분들을 위해 솔직하게 정리했습니다.

리부트라서 손해 본 영화, 그런데 진짜 문제는 뭐였을까
리부트란 기존 시리즈와의 연속성을 끊고 새로운 세계관으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은 토비 맥과이어 주연의 전작 시리즈가 끝난 지 5년도 안 된 시점에 개봉했습니다. 당연히 "너무 이르다"는 반응이 쏟아졌고, 저도 처음엔 그 분위기에 공감하는 쪽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문제는 타이밍만이 아니었습니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저는 계속 전작과 비교하면서 봤습니다. 피터 파커의 성격이 다르다, 분위기가 다르다, 거미줄 쏘는 방식도 다르다. 그 비교 자체가 영화를 제대로 못 보게 만든 장애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이 선택한 피터 파커는 내성적이고 소심한 청소년이 아닙니다. 학교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감정을 굳이 숨기지 않으며, 어른들에게도 쉽게 기죽지 않는 캐릭터입니다. 캐릭터 아크(Character Arc)라는 측면에서 보면, 여기서 캐릭터 아크란 주인공이 이야기 속에서 심리적으로 변화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뜻합니다. 이 영화의 피터는 능력을 얻은 뒤에도 한참을 실수하고 당황하는 과정을 꽤 공들여 보여 줍니다. 처음부터 영웅이 아니라는 점이 오히려 지금 시대의 청소년에게 더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이 기존 시리즈와 구별되는 지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웹 슈터(Web Shooter)를 피터가 직접 설계하고 제작하는 설정 (원작 코믹스에 가까운 방식)
- 피터의 부모와 오스코프(Oscorp) 연구를 중심으로 한 미스터리 서사
- 청춘 영화에 가까운 감정적 연출과 인물 관계 묘사
- 1인칭 시점을 활용한 스윙(Swinging) 장면 (당시로선 상당히 신선한 카메라 기법)
이 네 가지만 놓고 봐도 전작과는 분명히 다른 방향을 선택한 영화입니다. 당시에는 그게 낯설었지만, 지금은 그 선택이 꽤 용기 있는 시도였다고 생각합니다.
앤드루 가필드와 엠마 스톤, 화면이 왜 저렇게 자연스러울까
다시 봤을 때 가장 놀랐던 부분이 바로 두 배우의 호흡이었습니다. 억지로 설계된 로맨스가 아니라, 진짜 서로 좋아하는 사람들처럼 보였습니다. 그 이유가 있었습니다. 당시 앤드루 가필드와 엠마 스톤은 이 작품을 계기로 실제 연인 관계로 발전했었다고 합니다. 그런쪽은 관심이 없어 몰랐는데 그걸 알게 되면서 보니 더 감정이 올라옵니다. 스크린 케미스트리(Screen Chemistry)란 두 배우가 화면 안에서 만들어 내는 감정적 설득력을 뜻합니다. 이 영화의 두 사람은 그 케미스트리가 유난히 강합니다. 연구실에서 함께 대화하는 장면이나 복도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 같은 것들이 슈퍼히어로 영화치고는 꽤 섬세하게 찍혔습니다.
엠마 스톤이 연기한 그웬 스테이시도 인상적입니다. 이전 시리즈의 메리 제인이 주인공을 기다리는 역할에 가까웠다면, 그웬은 직접 문제를 풀고 위기 상황에서도 적극적으로 판단을 내립니다. 능동적인 여성 캐릭터를 슈퍼히어로 영화에서 보는 게 당시엔 그리 흔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게 개인적으로도 꽤 반가웠습니다.
반면 악역인 리저드(Lizard), 즉 커트 코너스 박사는 좀 아쉬웠습니다. 한쪽 팔을 되찾고 싶다는 인간적인 동기는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그 뒤로 악역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너무 빠릅니다. 내면의 갈등을 조금 더 보여 줬다면 훨씬 설득력 있는 빌런(Villain)이 됐을 텐데, 그 부분이 가장 아쉬운 대목이었습니다. 빌런이란 단순히 주인공과 싸우는 상대가 아니라 이야기의 무게를 함께 지는 존재입니다. 그 역할을 리저드가 충분히 해 내지 못했다는 점은 영화 전체의 완성도에도 영향을 줬습니다.
그럼에도 앤드루 가필드의 스파이더맨은 지금도 많은 팬들이 가장 안타깝게 여기는 버전입니다. 제가 직접 다시 봐서 느낀 건데, 그 이유가 단순히 팬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는 가면을 쓰고 있을 때보다 가면을 벗고 피터 파커로 있을 때가 더 빛났습니다.
지금 다시 봐야 하는 이유, 과소평가된 청춘 영화
슈퍼히어로 영화가 점점 많아지면서 오히려 이런 영화가 그리워질 때가 있지 않으신가요. 거대한 세계관보다 한 명의 인물을 이해하는 데 집중하는 영화 말입니다.
영화 비평 전문 매체 로튼 토마토(Rotten Tomatoes)에 따르면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관객 점수는 전문가 점수보다 높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습니다(출처: Rotten Tomatoes). 이는 평단의 평가보다 일반 관객이 이 영화에서 더 많은 것을 느꼈다는 의미로 읽힙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첫 관람 때는 "그냥 무난한 리부트"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이야기의 결이 생각보다 촘촘했습니다.
내러티브 구조(Narrative Structure) 측면에서도 이 영화는 나름의 시도를 합니다. 내러티브 구조란 이야기가 전달되는 방식과 순서를 뜻합니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은 피터의 부모에 대한 미스터리를 도입부부터 깔아 두고, 이를 영웅의 성장과 연결시킵니다. 단순히 능력을 얻고 악당을 무찌르는 흐름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를 찾아가는 이야기로 구성했습니다. 그래서 청춘 영화에 가깝다는 표현이 저는 이 영화에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마크 웹 감독은 원래 로맨스 영화 출신입니다. 그 배경이 영화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특히 인물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방식, 대화 속의 여백 같은 것들이 일반적인 액션 블록버스터와는 결이 다릅니다. 영화진흥위원회(KOFIC)의 분석에 따르면 슈퍼히어로 장르가 흥행할수록 인물의 감정적 서사보다 스펙터클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해진다고 합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그런 흐름 속에서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은 반대 방향을 선택했고, 그게 당시엔 단점으로 읽혔지만 지금은 오히려 장점으로 보입니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이 완벽한 영화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이야기가 여러 방향으로 동시에 달리다가 후반부에 다소 산만해지는 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는 다른 시리즈가 갖지 못한 온도가 있습니다. 청춘의 혼란, 정체성에 대한 질문, 그리고 처음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의 어색함 같은 것들이요. 지금이라도 한 번 더 보신다면, 처음과는 다른 영화가 보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