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예고편을 보고 나서 "굳이 봐야 하나" 싶었습니다. 예고편에서 바닷속 장면이 너무 어둡게 느껴져서 원작 애니메이션의 느낌은 아예 없겠다고 판단했거든요. 그런데 주말 저녁에 가족이랑 영화관에 앉고 나서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2023년 디즈니 실사판 인어공주, 기대보다 복잡한 영화였습니다.

할리 베일리, 노래 한 곡으로 증명했습니다
혹시 캐스팅 발표 당시 인터넷 반응을 기억하시나요? 저도 처음 스틸컷을 봤을 때는 솔직히 낯설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VHS 테이프로 반복해서 봤던 원작 이미지가 너무 강하게 박혀 있었거든요. 그런데 영화관에서 할리 베일리가 Part of Your World를 부르는 순간, 저도 모르게 집중이 됐습니다.
이 장면에서 주목할 부분은 단순히 음정과 박자가 아니었습니다. 보컬 퍼포먼스(vocal performance)라는 개념이 있는데, 여기서 보컬 퍼포먼스란 노래 기술뿐 아니라 감정 표현과 캐릭터 해석을 포함한 종합적인 무대 구현 능력을 의미합니다. 할리 베일리는 이 부분에서 원작과는 다른 결로 에리얼을 해석했습니다. 원작 애니메이션의 에리얼이 밝고 생기 넘치는 동경을 표현했다면, 실사판 에리얼은 인간 세상을 향한 외로움과 답답함이 더 짙게 깔려 있었습니다. 제가 직접 영화관에서 들었는데, 노래가 끝나고 나서 가족 중 누구도 한동안 말을 안 했을 정도였습니다.
반면 왕자 에릭은 조금 아쉬웠습니다. 분량 자체는 원작보다 늘었는데, 서사가 길어진 것에 비해 캐릭터의 존재감이 약했습니다. 캐릭터 아크(character arc), 즉 이야기 안에서 인물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과정이 에릭에게는 뚜렷하게 그려지지 않은 편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두 사람의 로맨스가 에리얼 중심으로만 흘러가는 느낌이 강했고, 원작에서 느꼈던 설렘의 균형이 조금 무너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닷속 연출, 현실적이면 좋은 걸까요
영화를 보고 나서 가족이랑 나눈 첫 마디가 "노래는 좋은데 뭔가 어색하다"였습니다. 그 어색함의 정체가 뭔지 집에 오는 내내 생각했는데, 결국 바닷속 비주얼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이번 실사판은 컬러 그레이딩(color grading) 측면에서 어두운 톤을 선택했습니다. 컬러 그레이딩이란 영상 후반 작업에서 색조와 명도를 조정하여 전체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기술을 말합니다. 원작 애니메이션은 채도가 높고 밝은 색감으로 판타지 감성을 극대화했는데, 실사판은 실제 바닷속처럼 어둡고 회색빛이 도는 방향을 택했습니다. 현실감을 높이려는 의도는 이해가 됩니다만, 그 선택이 동화적 세계관과 충돌하면서 판타지 장르 특유의 몰입감을 떨어뜨렸다고 봅니다.
세바스찬과 플라운더 같은 사이드 캐릭터들도 실제 해양 생물에 가까운 디자인으로 나왔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른 문제였습니다. 원작의 동글동글한 플라운더 이미지가 강한 분이라면 처음 보는 순간 꽤 당황할 수 있습니다. 저도 처음엔 좀 웃겼거든요. 디즈니 실사화가 늘 부딪히는 딜레마가 여기 있는 것 같습니다. 현실성과 캐릭터성을 동시에 잡는 게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 말이죠.
그래도 우르슬라만큼은 인상적이었습니다. 멜리사 맥카시의 연기는 뮤지컬 넘버 장면에서 특히 살아났는데, 과장된 악역임에도 너무 가볍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우르슬라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이 영화가 가장 디즈니다워졌다고 느꼈습니다.
실사판 인어공주의 바닷속 연출에서 체크할 부분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컬러 그레이딩 방향이 어두운 계열로 채도가 낮아 원작 대비 판타지 감성이 줄어든 편
- 세바스찬, 플라운더 등 조연 캐릭터의 디자인이 실제 해양 생물에 가까워 원작 팬에게는 낯설게 느껴질 수 있음
- 우르슬라는 과장된 연극적 분위기가 살아나 긍정적 반응이 많은 편
원작 팬일수록 감정이 복잡해지는 이유
이 영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는 결국 원작과 얼마나 연결되어 있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느꼈는데, 원작 애니메이션을 오래 기억해온 사람일수록 특정 장면에서 비교가 자동으로 됩니다. 그리고 그 비교가 반드시 실사판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건 아닌데, 기대했던 장면이 다르게 나오면 실망도 크게 옵니다.
원작 애니메이션은 1989년 개봉 이후 디즈니 르네상스(Disney Renaissance)를 연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디즈니 르네상스란 1989년부터 1999년까지 디즈니가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알라딘, 라이온 킹 등을 연달아 성공시키며 황금기를 누렸던 시기를 일컫는 표현입니다. 그 시기의 작품들이 지금까지도 전 세대에 걸쳐 강력한 정서적 각인을 남기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실사화가 짊어진 부담은 단순한 리메이크 이상의 의미였을 겁니다.
디즈니가 원작을 단순 복붙하지 않고 새로운 방향으로 해석하려 했다는 점은 보였습니다. 그 시도가 모두에게 환영받지는 못했지만, 완전히 안전한 길만 걷지는 않았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실사화 영화의 흥행 성과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원작 IP를 보유한 스튜디오의 실사화 전략이 OTT 환경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마케팅 수단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출처: IMDb). 또한 글로벌 영화 산업의 다양성 캐스팅 흐름과 관련하여 할리 베일리의 에리얼 역은 표현의 다양성(representation diversity) 측면에서도 주목받았는데, 이는 특정 집단이 대중 미디어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하는 포용적 캐스팅 방식을 의미합니다(출처: 로튼 토마토).
결국 이 영화를 편하게 보려면 "원작과 다른 버전의 인어공주"라는 전제를 깔고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원작의 감성을 그대로 재현하기를 기대하면 계속 빈자리가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보다는 할리 베일리가 만들어낸 새로운 에리얼을 하나의 독립된 해석으로 받아들일 때, 영화가 주는 좋은 부분들이 더 잘 보이는 것 같습니다. 완벽한 영화는 아니지만, 영화가 끝나고도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던 건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