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오후에 딱히 할 일이 없을 때, 예전에 봤던 영화를 다시 틀어보는 습관이 있습니다. 이번에 다시 꺼낸 게 존 윅3: 파라벨룸이었는데, 솔직히 처음 볼 때와는 전혀 다른 영화처럼 느껴졌습니다. 첫 관람 때는 그저 화려하다는 인상만 남았는데, 두 번째로 보니까 이 영화가 단순한 총격전 모음집이 아니라는 게 훨씬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롱테이크와 건 푸(Gun Fu)가 만들어낸 액션의 결
요즘 액션 영화를 보다 보면 화면이 너무 빨리 바뀌어서 뭘 보고 있는 건지 모르겠는 순간이 있습니다. 저도 그런 영화를 보고 나면 왠지 손해 본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존 윅3는 정반대였습니다. 배우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끊지 않고 길게 보여주는 롱테이크(long take) 방식을 적극적으로 사용합니다. 여기서 롱테이크란 컷 편집 없이 카메라를 오래 돌리는 촬영 기법으로, 배우의 실제 동작이 고스란히 화면에 담긴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제가 직접 다시 보면서 느낀 건, 이 방식 덕분에 존 윅이 상대를 제압하는 과정의 흐름이 머릿속에 그대로 남는다는 점이었습니다. 특히 초반 도서관 격투 장면은 책을 집어 들고 공간 자체를 무기로 쓰는 연출이 인상 깊었습니다. 이어지는 골동품 박물관의 칼싸움도 마찬가지였는데, 전시된 단검과 유리 케이스까지 동선 안에 녹아드는 방식이 무술 공연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개념이 건 푸(Gun Fu)입니다. 건 푸란 총기 사격과 근접 격투 기술을 결합한 전투 스타일로, 존 윅 시리즈를 대표하는 시그니처 액션 언어입니다. 단순히 총을 잘 쏘는 게 아니라, 사격과 타격과 이동이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는 것이 핵심입니다. 키아누 리브스는 이 동작들을 소화하기 위해 유도, 주짓수, 전술 사격(tactical shooting) 훈련을 수년간 병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전술 사격이란 전투 상황에서 정확성과 이동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실전형 사격 훈련을 말합니다. 화면에서 동작이 자연스럽게 보이는 이유가 단순히 스턴트팀의 도움만이 아니라는 걸, 보다 보면 실감하게 됩니다.
감독 채드 스타헬스키가 스턴트맨 출신이라는 사실은 이 영화를 이해하는 데 꽤 중요한 배경이 됩니다. 배우의 몸이 어떻게 움직여야 화면에서 가장 강렬하게 보이는지를 본능적으로 아는 사람이 연출했기 때문에, 액션이 설계된 느낌보다 살아 있는 느낌으로 전달됩니다. 할리 베리가 연기한 소피아와 군견 두 마리가 함께 펼치는 모로코 시퀀스도 그 연장선에 있었는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개가 전투에 참여하는 장면이 어색할 줄 알았는데, 실제로 보면 인간과 동물의 동선이 정밀하게 맞물려 있어서 오히려 시리즈에서 가장 신선한 장면 중 하나로 기억에 남았습니다.
존 윅3의 액션 연출 방식이 현대 액션 영화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롱테이크 중심 촬영으로 배우의 실제 동작을 그대로 노출
- 건 푸 스타일을 통해 사격과 격투를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
- 공간과 소품을 액션의 일부로 설계하는 환경 활용 연출
- 빠른 컷 편집 대신 관객이 액션의 논리를 따라갈 수 있는 구도 유지
하이 테이블과 콘티넨탈, 세계관이 주는 몰입감
저는 처음에 최고회의(하이 테이블, High Table)의 존재가 좀 갑작스럽다고 느꼈습니다. 1편과 2편을 이미 본 상태였는데도 3편에서 장로(The Elder)가 등장하는 순간에는 잠깐 멈칫했거든요.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 다른 사람들의 후기를 찾아보면서, 이 세계관이 얼마나 촘촘하게 설계되어 있는지를 다시 확인하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하이 테이블의 구조가 오히려 흥미롭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하이 테이블이란 존 윅 시리즈에 등장하는 전 세계 킬러 조직들의 최고 통치 기구로, 이 세계의 법과 질서를 관장하는 절대 권력입니다. 돈보다 규칙이 더 강력한 힘을 갖는 구조인데, 이게 현실과 다르면서도 내부 논리가 일관되어 있어서 영화 안에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집니다.
콘티넨탈 호텔의 불가침 원칙도 마찬가지입니다. 호텔 안에서는 누구도 살인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마커(Marker) 기반의 계약 시스템이 작동합니다. 여기서 마커란 피의 맹세로 맺어진 절대적인 의무 계약을 상징하는 물건으로, 한 번 주고받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이행해야 합니다. 이 규칙이 영화 전반에 긴장을 유지시키는 뼈대 역할을 합니다. 규칙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것이 깨지는 순간의 충격이 훨씬 크게 느껴지는 것이고요.
제 경험상, 이 세계관의 매력은 처음 볼 때보다 두 번째 볼 때 훨씬 크게 다가옵니다. 첫 관람 때는 콘티넨탈 호텔 규칙이나 금화 시스템이 그냥 배경처럼 지나쳤는데, 다시 보니 그 설정들이 이야기 전체를 연결하는 핵심 고리였습니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 배경이 모로코까지 확장되면서 이 규칙이 뉴욕 한 도시가 아니라 전 세계에 적용되는 시스템임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영화 산업 전반에서 프랜차이즈 세계관 구축의 중요성은 이미 여러 연구에서 검토된 바 있습니다. 관객이 시리즈에 지속적으로 몰입하는 데 세계관의 일관성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은 영화 마케팅 분야에서도 주목받고 있습니다(출처: 한국영화진흥위원회). 존 윅 시리즈는 그 사례로 자주 인용됩니다.
다만 한 가지는 솔직하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비슷한 강도의 전투가 이어지면서 조금씩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구간이 있었습니다. 초반의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하려면 중후반 어느 지점에서 완급 조절이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그게 이 영화의 단점이라기보다, 액션에 전력을 쏟은 결과로 생기는 부작용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미국 영화 데이터베이스 기준으로 존 윅3는 비평가 승인 지수 89%를 기록하며 시리즈 중 높은 평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출처: Rotten Tomatoes).
존 윅3: 파라벨룸은 액션 그 자체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려 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스토리보다 화면을 어떻게 설계하고 움직이는지가 더 기억에 남는 작품이고, 그 점에서 충분히 성공했다고 봅니다. 시리즈를 처음 접하는 분이라면 1편부터 순서대로 보시는 걸 권합니다. 세계관을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의 차이가 꽤 크거든요. 저도 이번 감상 이후 자연스럽게 4편까지 이어서 보게 됐고, 1편부터 정주행을 다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고: - 한국영화진흥위원회: https://www.kofic.or.kr
- Rotten Tomatoes 존 윅3 평가: https://www.rottentomato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