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히어로 영화 장르의 흥행 성적은 아직까지 외국 작품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얇은 편입니다. 그 얇은 계보 안에 2025년 5월 개봉한 '하이파이브'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저는 개봉일에 바로 영화관을 찾았는데, 단순한 코미디 액션인 줄 알았지만 사람 사이의 관계 이야기로 끝난 영화였기에 더 만족스러운 영화로 느껴졌습니다.
초능력 설정이 현실적으로 느껴진 이유
히어로 영화에서 초능력 설정이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기란 쉽지 않습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에서 수십 명의 슈퍼히어로가 이미 등장했고, 국내에서도 '전우치' 같은 도술 기반 캐릭터가 있었으니까요. 그런 선례들과 비교했을 때 '하이파이브'의 설정이 꽤 독특하게 느껴졌습니다.
이 영화는 장기 이식(organ transplant), 즉 초능력을 가진 인물의 심장이나 폐 같은 신체 기관을 이식받은 사람에게 그 능력이 전이된다는 설정을 택했습니다. 여기서 장기 이식이란 한 사람의 신체 기관을 적출하여 다른 사람에게 이어붙이는 외과적 시술을 말하는데, 이 영화는 그 의학적 행위에 초자연적 상상력을 얹은 셈입니다. 기존 히어로물처럼 방사선 피폭이나 유전자 변이 같은 클리셰를 피해간 덕분에 설정 자체가 꽤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더 인상적인 건 그 다음이었습니다. 보통 히어로 영화는 능력을 얻는 순간부터 주인공이 그걸 능숙하게 활용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의 인물들은 달랐습니다. 능력을 통제하지 못해 사고를 치고, 예상치 못한 결과에 당황하는 장면들이 반복됩니다. 제가 봤을 때 이게 오히려 더 공감이 됐습니다. 저도 갑자기 초능력이 생긴다면 멋있게 쓰기보다는 우왕좌왕하다가 주변에 피해부터 줄 것 같거든요. 이런 리얼리티(현실감) 있는 묘사 덕분에 인물들이 훨씬 인간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영화 캐릭터들이 얻은 능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심장 이식 후 초인적인 신체 능력을 얻은 인물
- 폐 이식 후 특수한 호흡 기반 능력을 발휘하는 인물
- 그 외 각각의 장기에 대응하는 고유한 능력을 가진 다섯 명의 히어로
이 구성이 단순해 보이지만, 각 캐릭터의 능력이 개성과 연결되면서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구조를 만들어냈습니다.
캐릭터 서사가 초능력보다 더 강하게 남는 이유
히어로 영화의 완성도는 결국 캐릭터 아크(character arc), 즉 인물이 이야기를 거치며 내면적으로 변화하고 성장하는 서사 구조에서 결정된다는 시각이 있습니다. 저는 이 점에 꽤 동의하는 편인데, '하이파이브'는 그 측면에서 생각보다 탄탄했습니다.
각 인물은 저마다의 배경과 결핍을 안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서로 다른 이유로 능력을 가지게 된 낯선 사람들이 억지로 엮이는 구조이지만, 갈등과 충돌을 반복하면서 조금씩 신뢰를 쌓아가는 흐름이 설득력 있게 그려졌습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건, 이 팀이 뭉치는 과정이 전혀 억지스럽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흔히 히어로 팀 영화에서 "갑자기 왜 같이 싸우는 거야?" 싶은 순간이 있는데, 이 영화는 그 의문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 중심에서 분위기를 잡아주는 역할을 한 건 라미란 배우가 맡은 후레쉬걸 캐릭터였습니다. 웃기면서도 서로를 다독이는 포지션, 이런 역할을 라미란 배우만큼 자연스럽게 소화하는 배우가 또 있을까 싶었습니다. 영화 전체의 온도를 따뜻하게 유지시켜주는 게 바로 이 캐릭터였다고 생각합니다.
캐릭터 서사가 잘 작동하면, 후반부의 선택 장면들도 감정적으로 훨씬 크게 다가옵니다. 이 영화도 그랬습니다. 초능력으로 펼쳐지는 액션보다, 인물들 사이에 쌓인 시간과 감정이 후반부를 더 묵직하게 만들었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떠오른 건 화려한 액션 장면이 아니라, 캐릭터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었습니다.
장르 균형과 한국식 개그코드의 완성도
장르 하이브리드(genre hybrid), 즉 서로 다른 장르를 하나의 작품 안에 혼합하는 방식은 자칫 어느 쪽도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결과를 낳기 쉽습니다. 여기서 장르 하이브리드란 액션, 코미디, 드라마처럼 성격이 다른 장르 요소들을 하나의 내러티브 안에 섞어 구성하는 영화 제작 기법을 말합니다. 이 균형을 맞추는 게 생각보다 어려운 작업인데, '하이파이브'는 그 균형을 꽤 잘 잡은 편이었습니다.
액션 시퀀스(action sequence), 즉 고속 편집과 카메라 워크로 구성된 전투 장면들은 과도하게 무겁지 않으면서도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했습니다. 빠른 편집 리듬 덕분에 에너지가 유지되면서도 스토리 흐름이 끊기는 느낌이 없었습니다. 제가 직접 관람하면서 느낀 건, 이 영화가 CG나 스케일로 압도하려는 시도보다는 캐릭터의 움직임과 상황의 재미로 액션을 끌어가려 했다는 점입니다. 그 방향이 영화의 전체 톤과 잘 맞았습니다.
코미디 요소도 억지 개그 없이 상황과 캐릭터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왔습니다. 특히 빌런인 새신교 교주가 췌장 이식 후 젊어지는 장면은 황당하면서도 웃기는 한국식 코드가 제대로 살아있었습니다. 젊어진 교주를 연기한 진영 배우의 연기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더 웃겼는데, "왜 또 잘하냐"는 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이처럼 코미디와 드라마 사이의 온도 조절이 전반적으로 안정적이었습니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KOFIC)에 따르면, 국내 상업 영화 시장에서 장르 혼합 작품의 관객 만족도가 단일 장르 대비 평균적으로 높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습니다(출처: 한국영화진흥위원회). '하이파이브'가 택한 장르 균형 전략은 그 흐름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영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이파이브'를 두고 "한국형 히어로 블록버스터의 신호탄"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고, "규모는 아직 헐리우드에 비해 아쉽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저는 두 시각 모두 어느 정도 맞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 영화를 헐리우드 슈퍼히어로 블록버스터와 같은 기준으로 비교하는 건 애초에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내러티브 구조(narrative structure), 즉 이야기를 어떤 순서와 방식으로 전달하느냐는 측면에서 '하이파이브'는 분명한 선택을 했습니다. 여기서 내러티브 구조란 이야기의 설정, 갈등, 절정, 해소로 이어지는 서사적 골격을 의미합니다. 이 영화는 스펙터클보다 관계에 무게를 뒀고, 그 선택이 영화의 온도를 결정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방향이 오래 기억에 남는 영화를 만들기도 합니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KOBIS)의 집계에 따르면, 국내 오리지널 장르 영화의 장기 흥행 지속력은 입소문 기반의 감정적 공감대 형성과 높은 상관관계를 보입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KOBIS). '하이파이브'가 단순 오락을 넘어 관계 이야기로 기억되는 영화라면, 그 흥행 여력도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이 영화가 결국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라는 질문에 저는 이렇게 답하고 싶습니다. "같이 버티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요. 초능력보다 중요한 건 옆에 남아주는 사람이라는 감각이 영화 내내 흘렀고, 그게 가장 오래 남았습니다. 한국식 히어로 영화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고민하는 분이라면, 한번 직접 극장에서 확인해보시길 권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