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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드윅 보스만이 2020년 8월 세상을 떠난 뒤, 마블은 선택의 기로에 섰습니다. 새로운 배우로 티찰라를 교체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이어갈 것인지. 저는 개봉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이 작품이 어느 쪽 선택을 했든 쉽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나왔을 때, 그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고 느꼈습니다.

채드윅 보스만의 빈자리, 영화가 다룬 방식
MCU(Marvel Cinematic Universe), 즉 마블이 영화와 드라마를 하나의 연결된 세계관으로 구성한 방식에서 블랙 팬서는 처음부터 독특한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2018년 개봉한 전작은 전 세계 누적 박스오피스 약 13억 4천만 달러를 기록했습니다(출처: Box Office Mojo). 이 수치는 단순한 흥행을 넘어, 블랙 팬서가 아프리카계 히어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문화적 사건이기도 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습니다.
와칸다 포에버는 그 성공의 무게를 짊어진 채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저는 극장에 앉아 오프닝 시퀀스를 보는 순간, 이 영화가 처음부터 헌사적으로 슬픔을 직접 꺼내들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티찰라 왕의 죽음을 배경에 깔면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방식은, 솔직히 제게 묵직하게 다가왔습니다. 보통 마블 영화라면 도입부부터 속도감을 붙이는데, 이 작품은 달랐습니다.
여기서 헌사(tribute)란, 고인이 된 실존 인물이나 캐릭터를 영화 안에서 공식적으로 기리는 방식을 뜻합니다. 이 방식을 두고 "단순한 전략적 선택 아니냐"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좀 다르게 느꼈습니다. 티찰라를 떠나보내는 장면에서 현실의 채드윅 보스만이 겹쳐 보이는 순간이 있었고, 그 감정은 연출만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이야기의 흐름이 느려진다는 점은 분명히 있습니다. 극 중 캐릭터들의 그리프 아크(grief arc), 즉 상실 이후 감정적으로 회복해 나가는 서사 구조가 초반 한동안 집중적으로 배치됩니다. 이를 "드라마가 너무 길다"고 보는 분들도 있는데, 저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빠졌다면 영화가 훨씬 공허하게 느껴졌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슈리(레티티아 라이트)의 변화가 이 영화의 중심에 있습니다. 전작에서 슈리는 비브라늄(Vibranium), 즉 와칸다에서만 채굴되는 초희귀 금속 소재를 기반으로 한 기술 장비를 개발하는 천재 공학자로 등장했습니다. 그런 인물이 오빠를 잃은 뒤 분노와 복수심, 그리고 책임감 사이에서 흔들리는 모습은 단순한 히어로 성장 공식과 다릅니다. 저는 슈리가 새로운 블랙 팬서 수트를 처음 입는 장면보다, 그 이전에 감정을 억누르며 스스로를 다잡는 장면들이 더 인상 깊었습니다.
와칸다 포에버에서 주목해야 할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채드윅 보스만의 부재를 대역 없이 캐릭터의 죽음으로 처리한 결정
- 슈리를 단순한 후계자가 아닌 감정적 주체로 다룬 각본 구성
- 와칸다라는 국가가 지도자 부재 이후 어떻게 흔들리는지를 보여준 정치적 서사
네이머와 탈로칸, 새 빌런이 설득력 있었는가
네이머는 마블 코믹스 역사에서 1939년 처음 등장한 캐릭터입니다. 이는 마블의 대표 캐릭터인 아이언맨(1963년)보다도 20년 이상 앞선 등장이라는 점에서, 코믹스 팬이라면 이미 익숙할 이름입니다(출처: Marvel Entertainment). 영화에서는 원작의 아틀란티스 설정을 버리고 메소아메리카 문명을 기반으로 한 탈로칸 왕국의 지도자로 재해석했습니다.
이 재해석에 대해 "원작 팬으로서 실망스럽다"는 의견도 있고, "새로운 문화적 배경을 입힌 덕분에 더 신선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제가 직접 영화를 보고 느낀 건, 탈로칸이라는 세계관 자체는 굉장히 매력적인 소재였다는 점입니다. 수중 문명이라는 설정, 메소아메리카의 시각적 요소를 결합한 비주얼은 기존 MCU에서 보지 못했던 결이었습니다.
테노치 우에르타가 연기한 네이머는 전형적인 빌런(villain), 즉 악역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그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고, 그 목적이 자신의 백성을 지키는 것이었기 때문에 관객 입장에서 그의 행동을 이해는 할 수 있었습니다. 차분하지만 위협적인 태도, 오래 살아온 자의 무게감을 표현하는 방식은 꽤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다만 네이머와 탈로칸에 대한 아쉬움도 솔직히 있습니다. 앤티히어로(anti-hero)란 전통적인 선악 구분에서 벗어나 복잡한 동기를 가진 캐릭터를 말합니다. 네이머는 이 정의에 가장 가까운 MCU 캐릭터 중 하나였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그 복잡성이 단순한 충돌 구도로 압축되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두 문명의 갈등이라는 테마가 마지막까지 충분히 파고들지 못한 채 액션으로 마무리된 부분은 조금 아쉬웠습니다. 더 많은 시간을 탈로칸의 역사와 네이머의 내면에 투자했다면, 이 작품은 히어로 영화의 범주를 넘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작과 달리 이 작품은 두 집단 모두 생존을 위해 싸운다는 구조를 가집니다. 강대국의 개입 속에서 자신들의 정체성과 영토를 지키려는 소국의 이야기라는 측면에서, 단순한 히어로 대 빌런 공식보다 현실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와칸다 포에버를 보고 나서 가장 오래 남은 감정은 화려함이 아니라 여운이었습니다. 이 영화가 완벽하게 정리된 작품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이야기가 많고, 전개가 느린 구간도 분명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 영화가 채드윅 보스만이라는 배우와 티찰라라는 캐릭터를 제대로 보내주려 했다는 점에서 그 선택 자체를 존중합니다. 티찰라의 유산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더 보고 싶다면, 먼저 전작인 블랙 팬서(2018)를 보고 이 작품을 이어서 보는 것을 권합니다. 두 작품의 감정선이 연결될 때 비로소 와칸다 포에버가 왜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졌는지가 더 잘 이해될 것입니다.
참고: - Box Office Mojo — 블랙 팬서 전작 박스오피스 데이터
- Marvel Entertainment — 네이머 캐릭터 등장 연도 및 원작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