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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저는 이 영화를 처음 볼 때 큰 기대가 없었습니다. 아파트 안에서만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설정이 답답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나서 한동안 집에 혼자 있을 때 창밖을 자꾸 확인하게 됐습니다. 좀비보다 고립감이 더 무서운 영화라는 평가가 괜히 나온 게 아니더라고요.

아파트라는 공간이 만드는 현실적 공포
좀비 영화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넓은 도시나 황폐한 외곽 지역을 배경으로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살아있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파트 한 채 안팎에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제 경험상 이 선택이 오히려 공포를 더 키웠습니다.
영화는 클로즈드 서바이벌(Closed Survival) 구조를 취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클로즈드 서바이벌이란 탈출이나 이동 없이 제한된 단일 공간에서 생존을 이어가는 서사 방식을 의미합니다. 밖으로 나가는 선택지가 원천 차단된 상황에서 주인공이 할 수 있는 것은 버티는 것뿐입니다. 이 구조가 긴장감을 만드는 방식이 꽤 효과적이었습니다.
냉장고 속 음식이 줄어들고, 생수가 바닥나고, 배달이나 편의점 같은 일상의 인프라가 모두 사라지는 장면이 이어집니다. 솔직히 좀비가 문을 두드리는 장면보다 물이 떨어지는 장면이 더 긴장됐습니다. 제가 실제로 냉장고에 생수가 얼마나 있는지 떠올리게 됐을 정도였으니까요.
영화를 본 뒤에는 비상식량이나 생수를 집에 조금 쟁여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난 대비 관점에서 보면 이는 재난 대응력(Resilience)과 연결됩니다. 재난 대응력이란 예기치 못한 위기 상황에서 개인이나 집단이 기능을 유지하고 회복하는 능력을 뜻합니다. 한국 국민재난안전포털에서도 가정 내 72시간 생존 물품 비축을 권장하고 있습니다(출처: 국민재난안전포털).
영화 속 주인공이 드론으로 주변을 탐색하고, 낚싯줄로 이웃 건물과 물자를 주고받는 장면은 현대적 생존 방식이라는 느낌을 줬습니다. 기존 좀비 영화의 무전기나 총기 대신 스마트폰과 드론이 생존 도구가 된다는 점에서, 제목의 해시태그(#)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고립 심리가 만드는 감정의 무너짐
일반적으로 좀비 영화의 주인공은 위기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판단하고 행동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살아있다의 오준우는 그렇지 않습니다. 배고프면 짜증을 내고, 무서우면 웅크리고, 외로우면 눈물을 보입니다. 제 경험상 이 모습이 오히려 훨씬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영화는 사회적 고립(Social Isolation)이 사람에게 미치는 심리적 영향을 꽤 세밀하게 그립니다. 여기서 사회적 고립이란 타인과의 물리적, 디지털 연결이 모두 단절된 상태를 의미하며, 단기적으로도 심각한 심리적 손상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중 격리 경험자의 상당수가 우울감, 무기력증, 수면 장애를 호소했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되었습니다(출처: 대한불안의학회).
저도 팬데믹 초반 며칠 동안 집에만 있었을 때의 감각이 떠올랐습니다. 스마트폰을 수시로 확인하고, 인터넷이 조금이라도 느려지면 괜히 불안해지고. 영화 속 준우가 스마트폰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는 장면이 그냥 과장으로 읽히지 않았던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김유빈(박신혜)은 이 심리 구조에 변화를 만듭니다. 유빈은 단순히 구조받는 인물이 아니라 서로를 구하는 존재입니다. 두 사람이 드론을 매개로 처음 존재를 확인하는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긴장감이 높은 순간 중 하나였습니다. 연결이 끊겼다고 생각했던 세계에서 신호 하나가 살아날 이유가 되는 구조, 이 부분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봅니다.
다만 두 사람의 신뢰 관계가 조금 빠르게 형성되는 부분은 아쉬웠습니다. 극한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감정선이 조금 더 천천히 쌓였다면 후반부의 무게감이 달라졌을 것 같습니다.
생존 의지를 결정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연결이다
#살아있다가 던지는 메시지를 한 줄로 정리하면, 사람은 혼자서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이 포기 직전까지 몰리는 순간은 좀비가 가장 가까이 왔을 때가 아닙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연결되지 않는 순간입니다.
영화 속 준우가 활용하는 생존 방식을 보면 거창한 기술보다는 일상의 도구들입니다.
- 드론을 이용한 외부 정찰 및 신호 전달
- 낚싯줄과 생활용품을 활용한 이웃 건물과의 물자 교환
- 스마트폰 카메라를 통한 원거리 상황 파악
- 집 안 비축 식량과 식수 관리
이 목록이 흥미로운 이유는, 재난 상황에서 일반인이 실제로 취할 수 있는 행동 범위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화려한 무기나 특수 훈련이 아니라 집 안에 있는 것들로 버틴다는 설정이 현실적이었습니다.
물론 일부 장면에서는 필요한 장비가 너무 때맞춰 등장하는 편의적 전개(Deus ex Machina)가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란 이야기가 막힌 상황에서 뜬금없는 요소가 등장해 문제를 해결하는 서사 기법으로, 개연성 측면에서 약점이 되는 장치입니다. 영화적 허용이라고 받아들이면 크게 걸리지 않지만, 현실적인 묘사를 기대하고 봤다면 초반부에 비해 아쉬울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래도 #살아있다가 기억에 남는 이유는 액션보다 감정 때문입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제가 스마트폰을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 그 연결이 끊겼을 때 얼마나 빨리 무너질 수 있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습니다.
대규모 좀비 액션을 기대한다면 이 영화는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립된 사람이 어떻게 희망을 잃고 또 되찾는지를 보고 싶다면, #살아있다는 충분히 볼 만한 작품입니다. 한국 아파트라는 익숙한 공간이 배경이라 국내 관객에게는 감각적으로 더 와닿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참고: - 국민재난안전포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