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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히어로 영화일수록 빌런이 매력적이어야 한다는 말,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 기준으로 보면 토르: 러브 앤 썬더는 묘하게 아까운 영화입니다. 저는 처음 극장에서 이 영화를 봤을 때, 예상보다 훨씬 밝은 분위기에 잠깐 당황했습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난 뒤에도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건 화려한 액션이 아니라 고르라는 빌런의 눈빛이었습니다.

고르 더 갓 버처, MCU 빌런의 가능성과 한계
크리스찬 베일이 연기한 고르 더 갓 버처(Gorr the God Butcher)는 MCU 역대 빌런 중에서도 독보적인 설정을 가진 캐릭터입니다. 단순히 세계를 멸망시키려는 악당이 아니라, 신을 믿었다가 배신당한 인간의 이야기를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딸을 잃고 신에게 기도했지만 아무런 응답도 받지 못합니다. 그 상실감이 분노로 바뀌어 결국 신들을 사냥하는 길을 선택하게 됩니다.
제가 직접 봤을 때 느낀 건, 고르가 등장하는 장면만큼은 영화의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진다는 점이었습니다. 흑백에 가까운 색조, 낮게 깔린 목소리, 그리고 슬픔을 꾸역꾸역 참는 듯한 표정. 크리스찬 베일 특유의 메소드 연기(Method Acting) 덕분에 고르는 짧은 등장 시간에도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여기서 메소드 연기란 배우가 캐릭터의 심리와 감정을 완전히 내면화하여 실제처럼 표현하는 연기 기법을 말합니다. 단순히 대사를 외우는 수준이 아니라 캐릭터 자체가 되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영화의 전체 톤이 가볍고 유머 중심이다 보니, 고르가 가진 비극성이 충분히 전달되지 못하는 순간이 생겼습니다. MCU의 빌런 활용 방식에 관한 팬들의 비판을 분석한 콘텐츠에서도 "고르는 역대급 설정이었지만 스크린 타임이 지나치게 짧았다"는 평가가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출처: Screen Rant). 좋은 재료를 손에 쥐고도 충분히 요리하지 못한 느낌이랄까, 그 아쉬움이 영화를 보고 나서도 꽤 오래 남았습니다.
캐릭터성으로 보는 토르의 변화
MCU에서 토르라는 캐릭터가 걸어온 서사 아크(Character Arc)는 사실 꽤 인상적입니다. 서사 아크란 한 캐릭터가 이야기를 통해 겪는 내면적 성장이나 변화의 흐름을 의미합니다. 처음에는 오만한 신으로 등장해 아스가르드에서 쫓겨나고, 지구에서 인간성을 배우고, 어벤져스를 거치며 책임을 익히고, 엔드게임에서는 완전히 무너진 존재로 등장합니다. 러브 앤 썬더는 그 이후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 영화에서 토르가 가장 솔직하게 그려지는 시점이 겉으로 농담을 던지면서도 눈빛에서 공허함이 보이는 장면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강한 척하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곁에 없는 외로움, 그게 크리스 헴스워스의 연기를 통해 조용히 전달됩니다. 그리고 제인 포스터가 마이티 토르(Mighty Thor)로 돌아오면서 그 감정선이 다시 살아납니다.
나탈리 포트만이 연기한 제인 포스터는 전작들에서 단순한 연인 포지션에 머물렀다면, 이번에는 서사의 중심축으로 올라섰습니다. 특히 제인이 묠니르(Mjolnir)를 들게 된 이유, 즉 강함을 원해서가 아니라 마지막까지 누군가를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감정적 동기는 꽤 설득력 있게 다가왔습니다. 다만 두 사람의 과거와 현재 관계가 충분히 묘사되지 않아서, 마지막 장면의 감정이 예상보다 덜 터지는 부분은 아쉬웠습니다.
MCU의 캐릭터 개발 방식에 대한 서사학적 분석에서는 감정적 설득력이 부족할 경우 관객의 몰입도가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이 지적됩니다(출처: Harvard Business Review - Storytelling). 제가 볼때도 이 영화는 바로 그 지점에서 조금 헛발질을 했다고 생각됩니다.
타이카 와이티티 연출 스타일, 장점과 균형 문제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의 연출 스타일은 한 마디로 비선형적 감정 서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선형적 감정 서술이란 무겁고 가벼운 감정을 직선으로 쌓지 않고 교차시켜 배치하는 방식으로, 코미디와 비극이 한 장면 안에서 공존하게 만드는 기법입니다. 라그나로크에서 이 방식은 정말 잘 작동했습니다. 아스가르드의 멸망이라는 비극적 주제를 유머로 감싸면서도 감정이 희석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러브 앤 썬더에서는 그 균형이 조금 흔들린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가 직접 두 영화를 비교해 봤을 때, 라그나로크는 개그 장면 이후에 감정을 회수하는 시간이 있었지만, 러브 앤 썬더는 중요한 감정 장면에서도 바로 유머가 끼어들어 분위기가 리셋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고르의 딸 이야기나 제인의 상황이 다뤄지는 장면에서도 그 흐름이 종종 끊겼습니다.
시각적으로는 분명 볼거리가 있습니다. 신들의 도시 옴니포텐스 시티(Omnipotence City)의 색감과 구도, 그리고 전투 장면에서 활용된 흑백 연출은 인상적이었습니다. 배경 음악으로 활용된 건즈 앤 로지스(Guns N' Roses)의 선곡도 토르라는 캐릭터의 자유로운 이미지와 잘 맞아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연출의 개성이 이야기의 무게를 덮어버리는 순간이 있었고, 그 부분이 영화 전체 완성도에서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러브 앤 썬더에서 연출적으로 눈에 띄었던 요소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신들의 도시 옴니포텐스 시티의 과포화 색채 대비 고르 장면의 탈색 연출
- 건즈 앤 로지스 선곡을 통한 토르 캐릭터 이미지 강화
- 흑백 전투 장면에서의 강렬한 색 포인트 활용
상실과 회복, 이 영화가 남기는 것
토르: 러브 앤 썬더는 히어로 영화라기보다는 상실 이후를 살아가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토르는 엔드게임 이후 자신이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영화를 시작합니다. 고르는 사랑하는 것을 잃은 분노가 어떻게 사람을 파괴하는지 보여주는 캐릭터입니다. 제인은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도 마지막 순간을 의미 있게 쓰려는 인물입니다.
이 세 캐릭터가 사실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잃은 뒤에 어떻게 살 것인가." 제 경험상 이런 주제는 영화가 진지하게 파고들수록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러브 앤 썬더는 그 주제를 품고 있으면서도 끝까지 밝은 톤을 유지하려다 보니, 깊이와 가벼움 사이 어딘가에 걸쳐 있는 느낌으로 마무리됩니다.
그럼에도 토르: 러브 앤 썬더는 토르 시리즈를 꾸준히 따라온 분들이라면 충분히 볼 가치가 있는 작품입니다. 고르라는 캐릭터가 더 충분히 다뤄졌다면, 그리고 유머와 감정의 균형이 조금 더 정밀하게 조율되었다면 훨씬 높은 완성도가 나왔을 작품이라는 생각은 지금도 변하지 않습니다. 이후 MCU의 방향이 어떻게 이어질지 궁금하신 분들은 토르의 다음 행보에 주목해 볼 만합니다.
참고: - Screen Rant — MCU 빌런 분석 콘텐츠 참조
- Harvard Business Review — 스토리텔링과 감정 서술 관련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