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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 영화를 보러 가면서 "재미없으면 어쩌지"라고 먼저 걱정했던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판타스틱4: 새로운 출발을 보기 전에 딱 그 기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일부러 기대를 낮추고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 느낀 건 "이 팀, 다시 봐도 되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60년 넘은 팀을 다시 소개하는 방식, 캐릭터가 답이었다
판타스틱4는 1961년 마블 코믹스에서 스탠 리와 잭 커비가 만든 팀입니다. 판타스틱이 아니라 처음부터 '판타스틱4'입니다. 당시 슈퍼히어로 장르의 관습을 깼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으로, 완벽한 영웅이 아니라 능력을 얻은 뒤에도 가족 갈등과 인간적인 실수를 반복하는 인물들로 구성되었습니다. 그 전통이 이번 영화에도 이어졌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리드 리처즈, 수 스톰, 조니 스톰, 벤 그림이라는 네 인물은 각각 전혀 다른 결을 가지고 있습니다. 리드는 IQ(지능지수)보다 EQ(감성지수)가 부족한 천재 과학자라는 설정입니다. 여기서 EQ란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인식하고 조율하는 능력을 뜻하는데, 리드는 모든 걸 논리적으로 풀려다 주변 사람들의 감정을 자주 놓칩니다. 그 모습이 오히려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제가 직접 영화를 보면서 가장 오래 눈이 머물렀던 건 벤 그림이었습니다. 그는 강력한 힘을 얻었지만 외형 자체가 바뀌어버린 캐릭터입니다. 능력을 얻은 것이 아니라 익숙했던 자신의 모습을 잃은 사람에 가깝습니다. 저도 새로운 환경에 던져졌을 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속으로는 꽤 긴 시간 동안 버거웠던 경험이 있습니다. 벤의 감정이 그래서 남달리 와닿았습니다.
이번 영화에서 판타스틱 포가 다른 히어로 팀과 다른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처음부터 가족 관계가 팀의 중심 설정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능력보다 그 능력을 짊어진 사람의 고민이 이야기의 중심입니다
- 갈등이 의견 충돌이 아니라 서로를 잃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감정에서 비롯됩니다
어벤져스(Avengers)가 각자의 목적을 가진 영웅들의 연합이라면, 판타스틱 포는 팀보다 관계가 먼저라는 느낌입니다. 이 차이가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결정짓습니다.
갤럭투스, 악당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거대한 존재
갤럭투스(Galactus)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저는 그냥 거대한 빌런이 나오는 영화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영화에서 받은 느낌은 달랐습니다. 갤럭투스는 악의가 있는 존재가 아니라 생존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우주적 힘에 가깝습니다.
갤럭투스는 1966년 마블 코믹스 판타스틱 포 48호에서 처음 등장했습니다. 여기서 코스믹 엔티티(Cosmic Entity)라는 개념이 중요합니다. 코스믹 엔티티란 인간의 기준으로 선악을 판단하기 어려운 우주 차원의 존재를 뜻합니다. 갤럭투스는 그중에서도 행성 에너지를 소비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존재로 묘사됩니다. 지구 입장에서는 재앙이지만, 그 자체는 자연재해와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 설정의 빌런은 관객에게 전달되는 방식이 굉장히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악의가 없는 위협은 두려움보다 허탈감을 주기 쉽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영화에서도 갤럭투스의 위협이 감정적으로 충분히 전달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았습니다. 거대한 설정이 있지만 관객이 몸으로 체감하기까지의 과정이 조금 빠르게 지나갔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캐릭터가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등장했다는 점은 의미가 있습니다. MCU란 마블 스튜디오가 하나의 연결된 세계관 안에서 제작한 영화·드라마 시리즈 전체를 가리키는 용어로, 현재까지 30편 이상의 작품이 이 세계관 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출처: Marvel Studios). 갤럭투스의 등장은 단순히 이번 한 편의 빌런이 아니라, 앞으로 MCU가 우주적 규모로 이야기를 확장하겠다는 신호로 읽힙니다.
판타스틱 포라는 팀 자체가 원작에서 우주와 차원을 넘나드는 이야기에 자주 등장했다는 점도 이 흐름과 맞닿아 있습니다. 아이언맨이나 캡틴 아메리카가 지구 안의 사회적 갈등을 다뤘다면, 판타스틱 포는 인간이 우주 속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묻는 이야기에 더 가깝습니다. 그래서 갤럭투스는 이 팀과 함께 처음 소개될 적절한 존재였다고 봅니다.
새로운 출발이 남긴 것, 가능성과 숙제 사이
영화를 보고 나서 드는 생각은 "잘 만든 시작이지만, 아직 숙제가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판타스틱 포 소개, 가족 관계, 갤럭투스라는 우주적 위협, MCU 연결까지 한 편에 담으려다 보니 일부 요소가 충분히 깊게 파고들지 못했습니다. 특히 캐릭터 간의 감정 변화가 조금 더 천천히, 세밀하게 표현되었다면 훨씬 좋은 작품이 되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원작 팬들을 위해 덧붙이자면, 원작 코믹스에서 판타스틱 포는 멀티버스(Multiverse) 개념을 초기부터 탐구한 팀입니다. 멀티버스란 우리가 사는 세계 외에 평행하게 존재하는 다수의 우주를 가리키는 개념으로, 마블 세계관에서도 핵심 설정 중 하나입니다. 이번 영화는 그 가능성을 살짝 열어두는 방식으로 마무리되었는데, 솔직히 원작 팬이라면 더 과감한 도전을 기대했을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마블 스튜디오는 2019년 이후 페이즈 4(Phase 4)부터 새로운 세계관 확장을 본격화했으며, 판타스틱 포는 그 흐름에서 핵심 팀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출처: Screen Rant). 실제로 이번 영화가 보여준 팀 분위기, 특히 네 배우가 함께 있을 때 만들어지는 케미스트리(Chemistry)는 앞으로가 기대되는 이유가 됩니다. 여기서 케미스트리란 배우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감정적 호흡과 팀워크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제가 영화를 보고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은 장면은 거대한 액션 시퀀스가 아니었습니다. 누군가 자신의 변화된 모습을 조용히 받아들이는 순간, 누군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선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장면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 영화가 히어로물이면서 동시에 사람 이야기처럼 느껴졌습니다.
판타스틱4: 새로운 출발은 완성형 영화라기보다 출발점에 가깝습니다. 아직 다 채워지지 않은 빈 공간이 있지만, 그 공간이 다음 이야기에 대한 기대로 연결됩니다. 원작을 잘 모르는 분도, 판타스틱 포를 처음 만나는 분도 극장에서 한번 확인해 보시길 권합니다. 거대한 세계관보다 네 사람의 관계를 중심으로 보시면 훨씬 더 오래 남는 영화가 될 것입니다.
참고: - Marvel Studios 공식 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