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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포머 시리즈를 통틀어 가장 많은 역사적 설정을 한꺼번에 끌어온 작품이 바로 2017년작 최후의 기사입니다. 처음 예고편을 봤을 때 아서 왕 전설과 거대 로봇이 같은 화면에 나오는 걸 보고, 솔직히 "이게 말이 되나?" 싶었습니다. 직접 보고 나서야 말이 되든 안 되든 일단 끝까지 눈을 떼기 어렵다는 걸 알았습니다.

아서왕 전설과 트랜스포머 세계관이 만났을 때 생기는 문제
영화의 가장 과감한 도박은 트랜스포머를 인류의 역사 속에 집어넣은 것입니다. 구체적으로는 트랜스-포밍(Trans-forming), 즉 외형 변환 능력을 가진 사이버트론 출신 생명체들이 중세 시대부터 지구에 존재했다는 설정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여기서 사이버트론이란 트랜스포머들의 고향 행성으로,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배경입니다.
제가 영화관에서 중세 전투 장면을 처음 봤을 때 느낀 건 신선함이 먼저였습니다. 갑옷을 입은 기사들 사이에 거대 로봇이 서 있는 구도는 어떤 역사 영화에서도 볼 수 없는 장면이니까요. 문제는 그 다음부터입니다. 영화는 아서 왕과 마법사 멀린, 원탁의 기사단이라는 아티팩트(Artifact)를 끌어옵니다. 여기서 아티팩트란 이야기 안에서 강력한 힘을 가진 유물이나 상징적 물건을 가리키는 용어로, 이 영화에서는 탈리스만이 그 역할을 합니다.
아서 왕 전설 자체가 역사적 실존 여부부터 논쟁이 있는 신화적 인물이라는 점은 중요합니다. 영국 국립문서보관소(The National Archives)에 따르면 아서 왕을 실존 인물로 확정할 수 있는 역사 기록은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았으며, 대부분의 이야기는 12세기 이후 문학적 창작물에 기반합니다(출처: The National Archives). 그러니까 영화가 역사를 왜곡했다고 비판하기보다는 처음부터 전설을 SF적으로 재해석한 창작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럼에도 이 설정이 충분히 발휘되지 못한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느끼기에 가장 아쉬운 지점은 이렇습니다.
- 아서 왕 시대 배경이 초반 10분 안에 끝나버리고, 이후에는 현재 시점 이야기로 완전히 넘어갑니다.
- 옥스퍼드 교수 비비안 웸블리가 역사적 연결고리를 설명하는 장면이 있지만, 설명 속도가 너무 빨라 관객이 소화하기 전에 다음 사건이 시작됩니다.
- 트랜스포머의 기원 이야기와 아서 왕 전설, 현재의 군사적 갈등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어느 하나를 깊이 파고들 여유가 없습니다.
영화 이론에서 이런 구조를 내러티브 과부하(Narrative Overload)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내러티브 과부하란 하나의 영화 안에 처리해야 할 이야기 축이 너무 많아 각각의 감정적 완결도가 낮아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아이디어 자체는 분명히 좋았는데, 그 아이디어를 담을 그릇이 너무 많았던 셈입니다.
옵티머스 변화와 범블비, 두 캐릭터가 보여주는 것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설정을 하나 꼽으라면 저는 주저 없이 옵티머스 프라임의 변화를 고릅니다. 시리즈 내내 인간의 편에서 싸워온 오토봇 리더가 이번에는 인간에게 위협적으로 보이는 행동을 합니다. 처음 그 장면을 봤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옵티머스가 왜 저러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자연스럽게 다음 장면에 집중하게 됩니다.
영화는 이 변화를 외부적 조종, 즉 사이버트론의 창조주 퀸테사(Quintessa)에 의한 세뇌라는 방식으로 설명합니다. 퀸테사는 이 영화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디셉티콘 계열의 존재로, 옵티머스의 가치관을 뒤흔드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영화가 이 세뇌 과정을 너무 빠르게 처리해 버렸습니다. 오랫동안 인간을 지켜온 존재가 인간을 향해 무기를 드는 과정에는 훨씬 더 깊은 심리적 묘사가 필요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캐릭터 반전은 감정적인 호흡이 길수록 더 강하게 남는데, 영화는 그 호흡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반면 범블비는 이 영화에서도 변함없는 존재감을 보여줍니다. 범블비는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오토봇과 인간 사이의 정서적 연결자 역할을 해온 캐릭터입니다. 대사 없이 라디오 주파수를 조합해 의사를 전달하는 방식은 처음 봤을 때부터 지금까지 묘하게 매력적입니다. 다만 이번 작품에서는 등장인물 자체가 너무 많아 범블비가 중심에 설 시간이 줄었습니다. 케이드 예거, 비비안 웸블리, 이자벨라, 새 트랜스포머들이 한꺼번에 등장하니까요.
시각효과(VFX, Visual Effects) 측면에서는 분명한 발전이 느껴집니다. VFX란 컴퓨터 그래픽 기술을 활용해 실제 촬영에서 구현하기 어려운 장면을 만들어내는 기법입니다. 영화진흥위원회(KOFIC) 자료에 따르면 2010년대 중반 이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VFX 비중은 전체 제작비의 40~60%에 달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며, 트랜스포머 시리즈는 그 대표적인 사례로 자주 언급됩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금속이 촘촘하게 맞물려 변형되는 변신 장면의 정교함은 초기 시리즈와 비교하면 확실히 달라졌습니다. 다만 그 정교함이 오히려 실루엣을 복잡하게 만들어, 싸우는 로봇이 어느 편인지 눈으로 따라가기 어려운 순간도 있었습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진짜 아깝다고 느낀 부분은 옵티머스의 내적 갈등입니다. "나는 누구를 위해 싸우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어느 장르 영화에서든 강력한 주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영화는 그 질문을 던지자마자 대규모 전투로 덮어버렸습니다. 조금만 더 욕심을 줄이고 이 한 가지에 집중했다면, 트랜스포머 시리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편이 됐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결국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는 보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평가가 완전히 달라지는 영화입니다. 거대한 로봇과 폭발적인 액션을 기대하고 극장에 앉는다면 충분히 즐길 수 있습니다. 반대로 아서 왕과 트랜스포머의 연결이라는 설정을 진지하게 따라가고 싶다면 영화가 기대만큼 깊이 파고들지 않아 아쉬울 것입니다. 저처럼 두 가지를 모두 기대했던 분이라면, 일단 설정 이해를 포기하고 옵티머스와 범블비만 쫓아가는 쪽이 훨씬 편하게 볼 수 있는 방법입니다.
참고: - The National Archives, 아서 왕 관련 역사 기록 (https://www.nationalarchives.gov.uk)
- 영화진흥위원회(KOFIC),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VFX 제작비 현황 (https://www.kofi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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