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처음 라이온 킹을 봤을 때는 사자들이 나오는 신나는 애니메이션 정도로만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다시 보니 무파사라는 캐릭터가 왜 그렇게 오래 기억에 남는지 조금씩 이해가 됐습니다. 그 기억을 안고 2024년 12월, 무파사의 과거를 다룬 프리퀄을 영화관에서 직접 봤습니다. 예상보다 훨씬 많은 생각을 남긴 영화였습니다.위대한 왕의 기원 서사, 처음부터 완벽하지 않았다제가 영화관에서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 영화, 무파사를 영웅으로 포장하지 않으려는 게 느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전형적인 영웅 서사(Hero's Journey) 구조를 따릅니다. 영웅 서사란 주인공이 평범한 세계에서 출발해 시련을 겪고 변화하며 성장하는 이야기의 틀을 가리키는데,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이..
저에게 공포영화는 무섭다고 하면서도 끌리면 보게 되는 장르입니다. '검은 수녀들'은 단순히 놀래키는 영화가 아니라 신앙과 인간의 불안을 함께 다루는 작품이라 보고 난 뒤 오히려 인간 심리가 더 오래 남았습니다.종교적 공포가 현실처럼 느껴지는 이유일반적으로 공포영화는 점프 스케어(jump scare), 즉 갑작스러운 자극으로 관객을 놀래키는 방식이 대부분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실제로 오래 불안한 감정을 남기는 건 그런 장면이 아닙니다. 저는 예전에 정말 하고싶지 않았지만, 친구들과 한여름 밤에 공포영화를 몰아서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귀신이 갑자기 튀어나오는 장면보다 조용한 공간에서 누군가 기도를 드리거나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장면이 훨씬 무서웠습니다. 설명이 안 되는 상황인데 분위기가 ..
영화관을 나오면서 멍하니 서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집에 오는 내내 "지금의 저는 과연 진짜 저일까?" 같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17'은 복제인간이라는 SF 설정을 통해 존재와 정체성이라는 질문을 끈질기게 던지는 작품입니다. 단순히 재밌는 영화가 아니라, 오래 남는 여운이 있었습니다.원작과 영화의 차이, 그리고 제가 느낀 것사실 저는 원작 소설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영화관에 들어갔습니다. 그냥 봉준호 감독이라는 이름과 로버트 패틴슨이라는 배우에 끌려 예매한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예전에 읽었던 에드워드 애슈턴의 소설 '미키7'을 원작으로 하고, 영화는 제목부터 '미키17'로 바뀌며 서사가 상당히 확장되었다고 합니다. 원작은 익스펜더블(Expendable), ..
저는 이 영화를 보러 가기 전까지 반신반의했습니다. 원작이 워낙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작품이라, 리메이크가 그 감정을 따라올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거든요. 그런데 영화관을 나오고 나서 한동안 멍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스토리가 아니라 감정이 먼저 올라왔습니다.원작과의 거리, 그리고 한국적 감정선저는 원작인 2008년 대만 영화를 꽤 어릴 때 봤습니다. 그때 받은 인상이 꽤 강렬했기 때문에 한국판인 이 영화가 그 위에 어떻게 올라서는지가 제일 궁금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한국판은 원작을 복제하려는 시도보다는 재해석에 가까웠습니다.영화 비평에서 자주 쓰이는 개념 중 하나가 내러티브 재맥락화(narrative recontextualization)입니다. 여기서 내러티브 재맥락화란, 동일한 이야기 구..
주인공이 침팬지입니다. 실존 인물의 전기 영화인데, 진짜로 침팬지가 나옵니다. 저도 처음엔 "이게 뭐지?" 싶어서 자리에서 조금 굳었습니다. 베러맨은 영국 팝스타 로비 윌리엄스의 실제 삶을 다룬 전기 영화로, 성장보다 실패와 후회의 과정을 더 솔직하게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기대와 당혹감이 동시에 들었던 영화였지만, 결국엔 꽤 오래 생각하게 됐습니다.침팬지 주인공, 몰입을 방해하는 설정인가영화를 보기 전 포스터만 봤을 땐 의인화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영화관에서 화면이 켜지자 진짜 침팬지 형태의 주인공이 등장했습니다. 순간 혹성탈출이 떠올랐고, 저는 속으로 "아, 이건 좀 무리한 설정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이 설정은 로비 윌리엄스 본인의 요청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스스로를 남들보다 진..
공포 영화를 정말 못 보는 사람이 오컬트 영화관을 찾아갔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제가 딱 그 상황이었습니다. 2025년 5월 3일, 거룩한 밤: 데몬헌터스를 영화관에서 직접 봤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예상보다는 훨씬 볼 만했습니다. 그리고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떠오른 얼굴은 마동석이 아니었습니다.오컬트 설정과 미장센, 이 영화는 어디까지 진지한가제가 이 영화를 보러 간 이유 중 하나는 "오컬트에 액션이 섞이면 덜 무섭지 않을까"라는 계산 때문이었습니다. 깜짝 놀라는 점프 스케어, 그러니까 화면이 갑자기 튀어나오며 관객을 놀라게 하는 연출 기법이 싫어서 공포물을 잘 못 보는 편인데, 이 영화는 그런 방식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대신 분위기로 조여드는 방식, 즉 서스펜스(suspense) 중심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