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이 영화를 별 기대 없이 틀었습니다. 밤에 혼자 뭐 볼까 뒤적이다가 그냥 추격 액션이겠거니 하고 재생 버튼을 눌렀는데, 10분도 안 돼서 자세를 고쳐 앉았습니다. 영화 탈주는 단순히 북한에서 남한으로 넘어오는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자유를 갈망하는 인간의 절박함, 그리고 그 절박함을 짓누르는 체제의 무게를 꽤 묵직하게 담아낸 작품이었습니다.폐쇄 공간이 만들어내는 긴장감, 어디서 오는 걸까요영화의 배경은 군사분계선 인근 북한군 내부입니다. 어두운 막사, 통제된 생활, 늘 누군가의 시선이 따라붙는 공간. 저는 이 분위기를 보면서 예전에 회사에서 눈치 보던 시기가 불쑥 떠올랐습니다. 물론 비교 자체가 어불성설이지만, 작은 행동 하나도 감시받는 것 같던 그 답답함이 영화 속 감정선과 묘..
친구들이랑 밤새 시리즈 몰아보기를 해본 적 있으시다면, 그 특유의 혼란스러운 흥분감을 아실 겁니다. 저도 예전에 '나우 유 씨 미' 1편부터 줄줄이 틀어놓고 보다가 3편 끝나고 나서 다 같이 "도대체 방금 뭐가 어떻게 된 거냐?" 하고 웃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논리가 아니라 분위기와 속도감으로 밀어붙이는 영화, 그게 이 시리즈의 정체성이었고, 3편도 마찬가지였습니다.더 커진 스케일, 그 안에 담긴 연출 전략'나우 유 씨 미 3'는 시작부터 빠릅니다. 캐릭터 소개를 길게 끌지 않고 사건 한복판으로 바로 뛰어드는 방식인데, 이걸 보면서 제가 떠올린 용어가 인 미디어스 레스(In Medias Res)였습니다. 인 미디어스 레스란 이야기의 시작점을 처음부터가 아닌 사건 한가운데에서 출발하는 서사 기법으로, 관객..
속편이 발표됐을 때 사실 걱정이 앞섰습니다. 1편의 마지막 반전이 워낙 강렬했기 때문에, 이걸 어떻게 이어받을 수 있을까 싶었거든요. 직접 극장에서 보고, 나중에 친구와 다시 집에서 틀어놓고 보면서 그 걱정이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2편은 완성도의 영화가 아니라 스타일의 영화였습니다.스케일 확장이 가져온 명암나우 유 씨 미 2는 1편의 라스베이거스 중심 서사에서 벗어나 마카오까지 무대를 확장합니다. 단순히 배경이 넓어진 게 아니라 음모의 층위 자체가 두꺼워졌습니다. 여기서 서사 층위란 관객이 한 번에 추적해야 하는 배신 관계와 목적 체계의 수를 말하는데, 1편이 2~3겹이었다면 2편은 5겹 이상으로 쌓여 있습니다.제가 친구와 집에서 다시 봤을 때 가장 많이 나온 말이 "근데 지금 ..
마술 영화를 보면서 진짜로 속은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있습니다. 친구 추천으로 아무 정보 없이 '나우 유 씨 미'를 처음 봤던 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잠깐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분명 두 시간 내내 화면을 뚫어지게 봤는데, 정작 중요한 건 하나도 못 봤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이 영화가 단순한 마술 소재 영화가 아니라 영화 전체가 거대한 트릭으로 설계된 작품이라는 걸, 그때 처음 실감했습니다.케이퍼 무비의 문법을 마술 쇼처럼 포장하다'나우 유 씨 미'는 장르적으로 케이퍼 무비(Caper Movie)에 속합니다. 케이퍼 무비란 정교한 계획을 세운 집단이 대담한 절도나 사기를 벌이는 범죄 오락 장르를 말합니다. '오션스 일레븐'이나 '이탈리안 잡' 같은 작품들이 대표적인데, 이 영화는 거기에 마술..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그냥 화제성 있는 예술 영화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았다니까 한번 봐야지 싶었던 것이지, 큰 기대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심야 상영으로 혼자 들어가서, 끝나고 나서도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이 글은 그 경험을 바탕으로 '가여운 것들'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본 기록입니다.성장 서사, 그런데 이렇게 비틀어도 되나'가여운 것들'의 이야기 구조를 한 줄로 정리하면 빌둥스로만(Bildungsroman)입니다. 빌둥스로만이란 한 인물이 무지한 상태에서 출발해 세상을 경험하며 자아를 형성해가는 성장 소설의 고전적 형식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한 인물의 성장기'인데, 이 영화는 그 구조를 그대로 가져오면서 설정을 완전히 뒤집어버립니다.죽..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친구한테 "이 시리즈는 진짜 믿고 보는 맛이 있다"고 했습니다. 범죄도시4는 새로운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보는 내내 집중하게 됐고, 끝나고 나서야 그 이유를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이 글에서는 속도감, 마석도 캐릭터, 빌런 구성을 중심으로 제가 실제로 느낀 것들을 풀어보겠습니다.속도감은 확실한데, 그게 전부일까일반적으로 범죄도시 시리즈는 "쉬지 않고 달리는 액션 영화"라고 알려져 있는데, 제 경험상 그 말은 반은 맞고 반은 부족한 표현입니다.범죄도시4는 시작부터 사건이 터지고, 추격이 이어지고, 충돌이 반복되는 구조로 전개됩니다. 이런 방식을 영화 용어로 내러티브 모멘텀(narrative momentum)이라고 합니다. 내러티브 모멘텀이란 이야기가 멈추지 않고 관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