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코미디 영화가 끝나고 나서 웃음보다 외로움이 더 오래 남은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딱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포스터만 봤을 때는 달달하고 가볍게 웃고 나오는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영화관에서 보고 나오면서 든 생각은 "생각보다 훨씬 조용한 영화다"였습니다.치호라는 인물이 불편하게 익숙했던 이유영화 속 치호는 대기업 연구소에서 과자의 배합 비율을 연구하는 인물입니다. 이른바 식품 관능 평가(sensory evaluation) 분야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데, 관능 평가란 맛, 향, 질감 같은 식품의 감각적 특성을 사람의 감각 기관을 통해 측정하는 방법을 말합니다. 숫자와 데이터로 과자를 분석하는 데는 탁월하지만, 사람 감정은 영 모르는 인물이죠.유해진 배우가 그 캐릭터를 연기..
재난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건 정말 괴물이나 사고일까요.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그 전제가 조금 흔들렸습니다.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는 다리 위 재난을 다룬 한국 생존 스릴러로, 극한 상황에서 사람이 얼마나 빠르게 변하는지를 정면으로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화려한 액션보다 인간 심리의 붕괴 쪽에 더 집중한 느낌이었습니다.안개 낀 공항대교, 폐쇄 공간이 만들어내는 공포재난 영화에서 공간 설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 영화를 보면서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대부분의 이야기가 공항대교 위에서 전개되는데, 이 제한된 배경이 오히려 긴장감을 극대화합니다. 물로 뛰어내릴 수도 없고, 앞으로 나아가기도 어렵고, 뒤로 돌아갈 수도 없는 구조입니다. 탈출구가 없는 공간, 그게 이 영화의 핵심 장치였습니다.사실 저도 비..
잔인한 영화를 보러 갔다가 웃음이 터지면 실패한 연출일까요, 아니면 성공한 설계일까요? 저는 친구들과 별 기대 없이 핸섬가이즈를 틀었다가 이 질문을 영화가 끝나고 나서야 떠올렸습니다. 잔인한 장면 앞에서 비명 대신 폭소가 나오는 경험, 생각보다 꽤 낯설고 묘한 기분이었습니다.슬래셔 문법을 거꾸로 읽는 설계슬래셔(Slasher) 장르란 외딴 공간, 정체불명의 위협, 무방비 상태의 피해자가 결합되는 공포영화의 하위 장르입니다. 쉽게 말해 외딴 산장에 놀러 간 젊은이들이 차례로 희생되는 구조가 전형적인 슬래셔 공식입니다. 핸섬가이즈는 이 공식의 재료를 그대로 가져오면서, 공식의 순서만 뒤집었습니다. 외딴 집, 수상하게 생긴 중년 남자들, 술 마시며 돌아다니는 대학생 무리까지 모든 클리셰(Cliché)가 등장합..
동화를 그대로 스크린에 옮기면 정말 재미있을까요? 저는 영화관에서 2025년 백설공주 실사화를 보고 나오면서, 그 질문에 꽤 오래 머물렀습니다. 어릴 때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 각인된 이미지가 너무 강했던 탓인지, 막상 보고 나니 기대했던 것과 다른 지점에서 훨씬 강하게 인상이 남았습니다.원작이 달라졌다, 그것도 꽤 많이그림 형제의 동화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기본 줄기는 유지하면서도 이야기 방향을 현대적으로 뒤틀었습니다. 저는 처음 예고편을 봤을 때만 해도 "그래도 원작 느낌은 살리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보고 나서는 그 예상이 꽤 빗나갔다는 걸 인정해야 했습니다.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캐릭터의 서사 구조입니다. 서사 구조란 이야기 안에서 인물이 어떤 역할을 맡고,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는지를 규..
비행기를 탈 때 유독 승무원 얼굴을 보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기체가 흔들리거나 기압이 달라질 때, 정작 불안한 건 승객인데 그쪽을 바라보는 건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가 대만에 가는 비행기에서 꽤 심한 난기류를 겪었을 때, 흔들리는 기체 속에서 승무원들이 끝까지 표정을 유지하려는 모습이 이상하게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영화 '하이재킹'을 보는 내내 단순한 스릴러가 아니라 뭔가 더 현실적인 무게감이 느껴졌습니다.실화 기반이 만들어내는 현실적 긴장감과 심리묘사'하이재킹'은 1971년 실제 발생한 대한항공 납치 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된 영화입니다. 창작된 설정이 아니라 역사적 실재(historical fact)를 기반으로 했다는 점이 영화를 보는 내내 다르게 작용했습니다. 여기서 역사적 실재를..
'범죄도시2'는 개봉 12일 만에 누적 관객 수 600만 명을 돌파한 작품입니다. 저도 개봉 초에 영화관에서 직접 봤는데, 그 숫자가 납득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게 전편보다 좋은 건가?"라는 물음이 함께 남았습니다. 시원하게 즐기고 싶은데 어떤 작품을 골라야 할지 고민된다면, 이 리뷰가 도움이 될 겁니다.서사구조: 스케일은 커졌지만 밀도는 달라졌다이번 작품의 배경은 한국을 벗어나 베트남까지 확장됩니다. 영화 용어로 말하면 내러티브 스케일(narrative scale), 즉 이야기가 펼쳐지는 시공간의 범위가 전편보다 훨씬 넓어졌습니다. 여기서 내러티브 스케일이란 이야기가 얼마나 넓은 지리적·시간적 범위를 다루느냐를 가리키는 개념으로, 스케일이 클수록 시각적 볼거리는 늘어나지만 대신 인물 간 관계나 갈등..